포토 에세이

삶의 재단은 '맞춤'

전상규 2020. 12. 7. 14:54

동네 마실 때 만난 이웃처럼 그렇게 한 사람을 계속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그이의 삶을 알게 된다. 인생의 큰 궤적에 남을만한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세밀하지는 못하지만 거의 진실에 가까운 삶을 엿볼 수 있다. 흩어진 추억들이 듬성듬성 끼워 맞추어지면 대략적이지만 그의 삶 전체가 그려진다.

벌써 51년째다.
간판에 '옷수선.가방수리'라는 붉은 칠로 옮겨놓고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보낸 세월이다. 34세 이후로 반백년의 세월이다. 어려운 시절 처자식 먹여 살려야 했던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인생이 그랬듯 휴일도 없이 이 공간을 지켰다. 유독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았고, 기술이 인정인 평화시장 손님의 구미에는 절로 단골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어려운 수선으로 마무리된 옷이나 가방을 만족하며 찾아간 손님은 어김없이 단골이 된다. 그런 재미도 있다. 그것이야 말로 기능공들의 가장 보람된 순간인 것이다.

 

작업실을 직접 배치하고 세월만큼이나 오래된 재봉틀이 그 기능에 맞게 자리를 잡았다. 빈틈 하나 없이 공간의 활용은 그 공간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요즘 나온 재봉틀이 어디 기능면에서 떨어지겠냐 만은 오랜 세월 함께한 작업실 재봉틀에 비할 수가 없다. 함께 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을 한다. 옷수선으로 이골이 난 몸은  아내가 챙겨주는 도시락을 들고  저절로 작업실로 향하게 된다. 365일 그렇게 51년이다. 코로나19로 작업량이 절반으로 줄어 수입이 줄어들어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 삶에 최적화되어 온 인생이니 힘들 때는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으며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는 지혜를 몸소 터득하였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점심을 챙겨주고 아이들을 키우는 아내의 수고로움을 들어 간혹 컵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할 때도 별미라며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있다. 그 추억 같았던 날 속의 기억을 오늘 재현(?)하며 컵라면에 물을 부었다. 

 

작업실에는 항상 기타가 있다. 독학으로 배운 기타 실력이 대단하다. 자갈치 광장에서 버스킹을 하는 연주자도 기타를 배우로 올 정도의 실력을 자랑한다. 작업실 한편에는 기타를 들고 멋지게 촬영한 사진이 크게 걸려있다. 혼자 해결해야만 했던 시대를 지내왔기에 뭐든지 스스로 해야 했고 기타 연주도 그랬던 것이다.

 

몇 년을 두고 마실 나온 것 처럼 만난 삶의 인연이 너무 고맙다. 기록이라는 의미는 접어 두고서라도 그냥 인생을 이야기하고 간혹 꺼내놓는 선생님의 삶을 편한 소파에 기대어 듣고는 함께 웃고 동감하며 그렇게 함께 하였음 좋겠다. '선생님 저 왔어요~' 하면 언제든지 웃으며 반겨주는 그런 마실 친구처럼 말이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해 본다.

 

삶의 재단이 '끊는다'는 의미가 아닌 '맞춤'이라는 지혜가 생길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