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오월, 하나되는 오월 May of All, May of One
모두의 오월, 하나되는 오월 May of All, May of One
518민중항쟁 제44주년
매년 오월이면 광주를 찾아야 하는 이유에는 의문을 달 수가 없다.
광주 오월의 민중항쟁의 정신계승은 뒤로하고라도 아직도 벗어날 수 없는 부채의식이 내 내면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한 구묘역은 여전히 열사들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오월,
1980년 동네 동산에서 놀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고 전재수 군은 지난 2021년까지 묘비에 '얼굴 없는' 희생자였다. 그리고 518의 막내였다.
2000년 고 고재수 군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의 형이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나왔다.
80년 당시 아들을 잃어 힘들어하는 아내 때문에 아들의 모든 사진을 불살라버려 41년간 얼굴이 없는 묘비로 있었는데 그렇게 다시 2021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돌아온 것이다.
당시 그의 형은 물었다.
"왜 놀고 있는 아이에게마저 총을 쏘았는지?"
계엄군의 수괴 전두환은 끝내 광주시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죽었다.
수구꼴통들은 아직도 518은 북한의 소행이라 믿고 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민중항쟁 #고전재수 #망월동 #역사왜곡반대 '
-인스타그램' jayubada03' 인용
나경택 전전남매일신문 기자의 생생한 기록의 사진전을 보면 그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계엄군도 무서웠지만 시민군들도 무서웠다고... 당시 시민들의 분노는 신군부 계엄군으로부터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으로 총을 들었지만 이 무차별적인 만행을 보도하지 않는 기자들에게도 심상찮게 분노를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옥상에서 찍은 사진들이 많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나경택기자의 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518민중항쟁 44주년 전야제를 위한 당시 금남로의 재현은 이곳이 해방구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곳에 서있는 모든 사람은 그 주체로 하나의 저항이자 희망이다.
남녀노소, 국적을 추월한다. 특히 이번 기념식에서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과 전세계인들의 참여가 확연하게 보인다.
진정한 해방구다.
오월 풍물단의 선두로 큰깃발을 휘날리며 전야제를 알린다.
그 뒤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들. 행진하며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거칠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주먹질에는 핏줄이 굵게 선명하다.
제주4.3 동지들, 광주시교육청, 오월어머니들, 해외동포들, 각정당, 여수·순천 10·19, 대구 2·28, 부마항쟁 그리고 합천에서 달려온 사람들.
넋을 기리는 공연은 죽은자와 산자를 연결시켰다.
강한 연대의 끈이 그 흐름속에 있었고 끝내 산자을 각성시킨다.
아직도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숙제를 남겼지만 하루도 진보하지 않는 날이 없다는 믿음은 결국 헌법 전문에 뼈속에 새기듯 남기게 될것이다.